연금술사를 처음 읽은 게 대학교 때였다. 그때는 그냥 모험 소설처럼 읽었다. 이집트 피라미드에 보물이 있다는 꿈을 꾼 양치기가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 재미있었지만 깊이 와닿지는 않았다.
창업을 하고 나서 다시 읽었을 때, 완전히 다르게 읽혔다.
합리적인 선택
산티아고에게 합리적인 선택은 스페인에 남는 것이었다. 양 떼가 있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어 있었다. 양들의 습성을 알고, 어디에 물이 있는지 알고, 어떤 마을에서 양털이 잘 팔리는지 알았다. 마을에는 좋아하는 여자도 있었다.
꿈 하나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처음 가보는 땅으로 떠난다는 건, 객관적으로 보면 무모한 결정이다. 그런데 산티아고는 떠났다. 나는 그 결정이 이해가 됐다.
갈증, 갈증, 갈증
매스프레소에서 일하면서 계속 한 가지 질문이 나를 괴롭혔다. '비상, 진학사와 협업해서 함께 공동 교재사업을 준비했다. 학원과는 관리형 유료교육용 Saas를 협의했고, 천재교육과는 문제은행을 아주 구체적으로 협의했다. 실무 타임라인도 모두 만들어졌다. 자체 LMS형 온라인 라이브강의, 과외도 준비했고 돈내는 고객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펀딩기간이 될 때마다 회사는 트래픽 중심의 사업에 다시 집중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아니.. 펀딩도 좋고 다 좋은데, 근본적으로는 돈 버는 회사가 되는게 먼저잖아;..
불만이 아니라 갈증이었다.
'답 베끼는 치팅 앱'이라는 선입견이 아니라, 실제 학생들의 오답을 기반으로 성적을 올려주는 교육상품을 아주 구체적인 교재, 관리상품, 강의상품으로 만들어 냈고 함께 할 교육회사 얼라이언스도 만들었거늘!!! 이 기간동안 투자유치와 회사의 펀더멘털에 대해 많은 배움이 있었다. 펀딩이 회사와 구성원의 성장을 자극해줄 수 있지만, 회사의 펀더멘털을 쌓는 것은.. 미래시점에서 돌아보면 오로지 회사의 몫이라는 것. 회사는 자본의 힘 앞에서.. 자본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와 전략을 극복하고 실존적인 결정을 해야 한다. 그것이 그 회사만의 오리지널리티겠지.
1류를 향한 갈증
1류와 2류를 가르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라 한다.
1류는 첫번째 류, 즉 이전사례가 없는 시점에서 첫 흐름을 만들고, 2류는 그걸 하루에서 자신들의 물길로 최적화한다.
우리나라 어떤 가든 주체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선도자의 케이스를 한국 버전으로 적용하려는 문화가 많다. 남해에 갔더니 동양의 나폴리라고하고, 강남의 거리는 테헤란로라 한다. 그냥 남해, 강남1로 라고 할 수 없는건가? 이 모든 것은 자신이 주체적으로 외부세계에 등장하지 못하고, 외부적 인정으로 자원을 확보하려는 약자의 효율적인, 하방이 막힌 전략일 거다.
그 덕분에 천편일률적인 서비스, 제품, A의 한국버전.. 카피캣이 넘쳐난다. AI로 뭐든 쉽게 만드는 세상에.. 이러한 상상력의 종말은 얼마나 많은 카피캣을 양산할 것인가.
그 때 경쟁력은 무엇인가? 누구나 유명가수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오디션을 할 때 자신만의 음악을 하는 사람. 악동뮤지션같은 사업이 매력적이지 않은가?
지금 시대의 A의 한국버전... 이런식의 전략은, 하방이 막힌게 아니라 오히려 가장 진입장벽 없는, 취약한 전략이 아닐지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 모든 사회시스템은 강해졌다. 이제 힘이 있으니, 한국전쟁부터 이어온 약자의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한다. 창업씬에서도 '나는 이렇게 사업을 그린다!'라고 확신을 가지고 고객을 믿고 결정하고, 비전을 세우는 팀이 늘 크게 성공했고, 돌아보면 그의 독식이 맞는 것이었다. 사회에 임팩트있는 서비스, 그리고 돈도 되는 사업이 눈에 보이는데 브레이크가 걸리는 것이 너무 잘 들여다 보인다.
언제까지 나는 불만만 할건가 이제는 내 길을 가야 할 때가 온거다.
그래서 항해를 시작했다.
의미있고, 돈 버는 일을 하자!! 아주 가열차게 출항을 했지만 현실은 쓰나미속으로 던져진 조롱박 뱃사공이었다. 고맙?게도 같이 출항한 동희가 있어서… ㅠㅠ 다행이다.
보물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연금술사의 결말이 좋다. 산티아고가 이집트에 도착해서 발견한 것은, 보물이 처음부터 자기가 있던 스페인 성당 아래에 있었다는 것이다.
허무한 결말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면 뭐하러 그 고생을 했나. 그런데 그 여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산티아고는 고향 성당 아래를 팔 이유가 없었다. 보물이 거기 있다는 걸 알 방법이 없었다. 사막을 건너고, 전쟁을 겪고, 연금술사를 만나고, 이집트까지 간 그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보물의 위치를 알게 된 것이다.
3년의 여정이 만든 지금
우리팀은 첫 3년간 식물 커머스 플랫폼을 했다. 지금 하고 있는 결제 사업과 겉으로는 관계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 3년이 없었다면 지금의 사업은 설계할 수 없었다. 그루우를 하면서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자영업자들을 알게 됐고, 결제의 문제를 체감했고, 내가 풀어야 할 문제를 발견한 것이다.
스페인에서 이집트까지의 여정이, 결국 스페인 성당 아래를 파게 만든 것처럼.
산티아고도 스페인에 남았다면, 보물이 성당 아래에 있다는 걸 평생 몰랐을 것이다. 떠나지 않아야 할 이유가 더 많았지만, 떠났기 때문에 알게 된 것들이 있다.
그러므로, 여정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Bon Voyag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