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커브는 깔끔하다. 투자를 받고, 초기에 살짝 하락하다가, 곧바로 우상향한다. 예측 가능하고, 투자자에게 보여주기 좋고, 피칭 덱에 넣으면 그럴듯하다.
하키스틱은 다르다. 처음엔 거의 수평에 가깝게 바닥을 긴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팀은 매일 전력으로 뛰고 있는데, 숫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날이 꺾이며 급격히 올라간다.
그 꺾이는 지점 이전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가. 그것이 J커브와 하키스틱의 결정적인 차이다.
1년차 — 온 우주가 도와주는 줄 알았다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투자를 받았다. TIPS에도 바로 선정되었다. 온 우주의 기운이 우리 팀 편인 줄 알았다. 이 사업은 무조건 성공할 거라고 믿었다.
서비스에 유저들이 점점 늘어갔다. 블로그에 리뷰글이 올라오고, 별점이 쌓였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플랜은 명확했다. 식물 키우기를 도와주는 유틸리티로 고객을 모으고, 식물을 판매하는 판매자를 연결해 거래를 만들어낸다. 이제 판매자를 입점시켜 커머스를 열고, 진실의 순간을 맞이하면 된다.
너무너무 기대가 되었다.
2년차 — 물음표의 시작
커머스를 열었다. PMF에 대해 온갖 물음표가 떠올랐다.
분명 일반 커머스보다 전환율은 높았다. 유저들이 좋아했고, 재구매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구매 전환이 떨어졌다. 숫자가 말해주는 현실과, 내가 믿고 싶었던 스토리 사이에 간극이 생기기 시작했다.
식물 모임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봤다. 초창기부터 앱을 쓰고 리뷰를 달아주었던 찐팬 분들을 찾아가서 티타임을 하며 의견을 들었다.
우리가 만든 건 참 좋았다. 다만, 그들이 반복적으로 꼭 여기서만 식물을 사야 하는 이유는 없었다. 그것이 결론이었다.
3년차 — 해외로 도전장을 내밀다
식물 관리 프로그램 자체만으로 돈을 벌고 있는 해외 서비스들을 알고 있었다. 서비스를 만드는 실력에서는 자신이 있었기에, 과감히 해외 진출에 도전했다.
Vision AI와 식물 관리에 특화된 LLM 상담이 User Acquisition을 이끌었고, 수많은 식물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Web 기반 SaaS 프로덕트가 Conversion과 Retention을 담당했다.
한국보다 훨씬 구독 전환이 좋았다. 해외 plant hobbyist들이 서비스를 좋아해주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앱 광고비가 올라가면서 새 고객을 유치하는 비용이 점점 더 늘어났다. LTV/CAC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3년 동안 순수 관리 유틸리티, 커머스, 커뮤니티, 라이브, 해외 SaaS까지 — 안 해본 게 없었다. 그런데 여전히 하키스틱의 날은 위로 꺾여 올라가지 않았다.
4년차 — 이게 PMF인가요?
식물 판매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시장의 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정리했다. 4가지 Value Proposition을 각각 다르게 설계한 랜딩페이지 실험을 돌렸다. 그 결과, 우리의 사업이 식물 판매자뿐만 아니라 모든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총 20명의 저마다 다른 사장님들과 하루 종일 같이 일했다. 가게에서 함께 사업을 운영해보니, IT 프로덕트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1명을 위한 프로덕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다음 5명을 위한 기능을 냈다.
그다음 8명을 위한 기능을 냈다.
한 발씩, 한 발씩.
어느덧 이 PMF 실험으로 시작한 프로덕트도 1년이 다 되어간다. 돌아보니 정말 다양한 경험과 성장을 쌓을 수 있었다.
모든 점이 선으로 연결되는 순간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다. 쌓인 백로그 중 임팩트 높은 것을 골라서 한 주를 시작할 때, 너무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에 감사하다.
얼마 전, 초기부터 우리 서비스를 써주신 사장님과 회식을 했다. 그동안 우리 팀이 고생한다며 판매하시는 과자도 보내주시곤 했는데, 이날은 BEP를 넘긴 기념으로 우리가 식사를 대접했다.
커머스도 해봤고, 라이브도 해봤고, 돈도 떼여봤고, 콘텐츠도 만들어봤고, 해외 구독도 출시해봤다. 결국 이 모든 경험이 지금 이 일을 하기 위한 것이었구나 — 모든 것이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PMF와 성장. 그 두 가지가 초기 스타트업이 집중해야 할 전부일 것이다.
우리는 지난 4년간 늘 같은 에너지 레벨로 달려왔다. 그렇기에 '더 열심히 한다'는 것도 상상이 어렵지만, 뭐 여튼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
전력질주보다 조금 더 오래갈 수 있게. 에너지 레벨도 좀 관리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