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이었다.
3년간 운영하던 식물 커머스를 접고, 새로운 사업으로 방향을 전환한 직후. 다음 주에 서비스를 런칭하기 위해 첫 고객을 만나러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든 게 새로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밤늦게 뉴스 알림이 떴다. 안동에 대형 산불이 났다고. 아버지의 과수원이 있는 쪽이라고.
그 밤의 질주
불이 났다는 뉴스를 보자마자 안동으로 차를 몰았다. 서울에서 안동까지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아버지한테는 전화가 안 됐다. 어머니도 안 받으셨다.
도착하기 30분 전쯤, 큰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울면서 말했다. 매형이 먼저 도착해 어머니를 모시고 시내로 나왔는데, 아버지가 절대 따라나오지 않으신다고. 잿더미에 계신다고. 우리 아빠 죽는다고 울부짖었다.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속도를 더 냈다. 마을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대피령이 떨어져 온 마을 사람들이 탈출하고 있었다. 경찰과 소방차가 교통을 통제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하자 경찰이 막았다. 위험하다고. 들어갈 수 없다고.
본인들이 구해줄 것도 아니면서 나를 막는 게 어이가 없었다. 거친 언사가 오갔고, 나는 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마을로 들어갔다.
잿더미 위의 아버지
도착하니, 아버지가 서 계셨다. 모든 전기가 끊기고, 타버린 연기 사이로, 온곳에 타오르는 불꽃들 사이에 서 계셨다. 30년 넘게 한 자리에서 과수원을 해온 그 밭. 사과나무가 줄지어 서있던 그 언덕. 전부 타버렸다. 나무도, 창고도, 올봄에 꽃이 필 준비를 하고 있었을 가지들도. 검은 재만 남았다.
그 장면 앞에서 묘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30년 넘게 한 자리에서 과수원을 해온 아버지와, 3년간 식물 키우기 사업을 한 내가 나란히 서 있었다. 그리고 우리 앞에 있는 것은 둘 다 불에 탄 잿더미였다. 아버지의 과수원도 타버렸고, 나의 이전 사업도 끝났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 정확한 대칭이었다.
"내가 내려가면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는다."
다 도망갔는데 왜 아직도 여기 계시냐고 물었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여기 사람이 남아있고, 그대로 두면 죽는 상황이 되어야 소방차가 여기를 먼저 와준다는 말씀이셨다. 정말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너무 맞는 말인데, 너무 슬펐고, 그 용기가 대단했다.
주인이 떠난 땅
주인이 떠난 땅에는 아무도 오지 않는다. 도망가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버텨야 다음이 생긴다.
한 주가 넘게, 까맣게 타버린 과수원과 마을을 복구했다. 밭을 둘러가며 불에 녹은 호스를 다시 잇고, 잿더미를 긁어내고, 녹아내린 소우리 천장을 보수했다.
아버지는 밭을 다시 일구기 시작했다. 타버린 나무를 치우고, 땅을 고르고, 새 묘목을 심었다.
여름 장마에 다시 안동에 내려갔을 때, 그 묘목과 벌판에 작은 잎이 나 있었다. 새로 심은 묘목들은 제대로된 열매를 맺으려면 최소 5년은 걸린다. 아버지는 그 몇 년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다.
그걸 볼 때마다 나도 내일 아침에 할 일이 선명해진다. 하루도 쉬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하며, 몇 년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람. 모든게 다 타버려도 다시 묘목을 심을 수 있는 용기를 내야지.
